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한국군 (문단 편집) === 경제적 이해관계 === 한국이 이렇게 외교관계에서 미국에 대해 갑의 위치에 서게 된 덕분에, 1966년 3월 4일에는 "한국군 월남 증파에 따른 미국의 대한 협조에 관한 주한 미 대사 공한"을 통해 막대한 군사원조와 경제원조를 약속받기에 이른다. 해당 문서는 당시 한국 언론에서 통용되던 이름([[https://mnews.joins.com/amparticle/1135147]])으로 윈스럽 길먼 브라운 주한 미 대사의 이름을 딴 '브라운 각서(Brown Memorandum)'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문서는 사실 정부간 외교문서이긴 했지만 [[신사협정|특정 조치들을 이행할 용의(用意)만을 대사를 통해 전달한 것인만큼]] 국제법적 구속력은 없었다. 하지만 공한이 문서로 남겨졌고 [[미국 대통령]]도 참전 대가로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약속[[https://m.hankookilbo.com/News/Read/199907270053643863|#]]한 만큼 미국 정부가 입을 씻을 수는 없었으며, 1970년 사이밍턴 청문회에 주한 미군 사령관 마이켈리스가 제출한 문서에 "The only plan to reinstate the MAP Transfer Program is that implied in the Brown Memorandum"이라고 쓰여있듯, 비록 시차가 있지만 'Brown Memorandum'이란 표현은 미국측 인사에 의해서도 사용되었다. 즉 미국측 당사자들도 이행해야 할 약속을 담은 [[각서]]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약속의 내용 중 군사원조에 대한 내용을 서술하자면, 한국군이 전투병력을 파견하면 미국은 한국군 17개 주력사단의 현대화를 위한 장비와 자금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추가로 [[전쟁특수]]로 미국은 한국에 여러 특혜들을 베풀었고, 참전한 한국군의 보급에 미국이 돈을 대주면서 한국에서 쓸 전쟁물자들을 한국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하면서 한국 산업도 활기를 띄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